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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화보, 광고

리빙센스 2024년 12월호

 

 

 

누구보다 용감한 싱어송라이터, 하현상

MUSIC LOGUNBROKEN NOTES상처받을 걸 알고도 계속 나아가는 사람을 용기 있다 말한다면, 누구보다 용감한 하현상. 용기라는 건 반드시 어떤 순간을 타개하는 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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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용감한 싱어송라이터, 하현상

 

상처받을 걸 알고도 계속 나아가는 사람을 용기 있다 말한다면, 누구보다 용감한 하현상.

 

어떤 감정이든 극단으로 가지 않게 스스로 제어한다는 하현상. 그가 가장 감정적일 때는 무대에서 노래할 때다.

 

용기라는 건 반드시 어떤 순간을 타개하는 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잠시 꺾이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천천히 나아가는 것 역시 용기다. 그런 면에서 노래하고 기타 치는 하현상은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2019년 JTBC 서바이벌<슈퍼밴드>에서 22세의 나이로 혜성같이 등장해 여리지만 맑고 섬세한 보이스로 시청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위기 앞에서 때론 무너지고 눈물짓는 모습도 여과 없이 보여주었지만, 결국 무대에서 자신을 증명하며 ‘호피폴라’라는 팀으로 우승하는 쾌거까지 달성한다. 이처럼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나아가는 그를 보고 있자면, 어쩐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샘솟는다. 또한 진정으로 아파 본 사람만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듯이, 3년 전 ‘등대’라는 곡에서 “아무리 도망쳐봐도 아침은 올 테니”라고 고백했던 그는 상처가 아문 굳은살 위로 다시 누군가를 위로하는 음악을 쓸 줄 아는 싱어송라이터다. 또한 그가 부른 ‘바람이 되어’의 유튜브 영상이 300만 조회수를 넘은 것은, 하현상의 목소리에 진한 슬픔을 어루만지는 어떤 힘이 있기 때문. 그런 그가 지난 10월 “슬픔은 나의 원동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발표한 새 EP 앨범 <Elegy>가 더더욱 특별한 이유다. 수록곡 ‘이유’에서 ‘태어나면 원래 아픈 걸까’라고 토로하면서도 “코미디물도 무척 좋아하거든요. 희극을 알아야 비극을 알고, 비극을 알아야 희극을 안다는 말도 있잖아요”라며 의외의 대답을 덤덤하게 털어놓는 사람. 여린 듯한 외면 안에 복합적인 면을 지닌 그와 어느 겨울날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나눈 대화.

 

 

영화〈인생은 아름다워〉로 스크린 데뷔까지 마친 현상. 익숙한 일이 아니었던 만큼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존재해 볼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경험이었다고.

 

 

EP 4집에 이어 9개월 만에 앨범을 발표했어요. 그간 어떤 일들이 자신에게 있었나요?
올 초 단독 콘서트를 끝냈을 시점이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던 시기였어요. 잠시 음악에서 도망간 적도 있었죠. 물론 중반부터 마음이 갈무리된 이후에는 제 자리로 돌아와 곡을 쓰기 시작했지만요. 무언가 뚜렷한 답을 찾은 건 아니었지만, 이런 음악을 해보면 좋겠다는 것까지에는 도달했어요. 그걸 <Elegy> 에 담았습니다.

이번 <Elegy> 앨범을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세요.
어느 때보다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많이 담으려 했어요. 아날로그 악기도 많이 쓰려고 했고, 스트링 편곡도 들어가 있죠. 그래서 더더욱 센티해지는 새벽이나 쌀쌀한 지금 계절에 듣기 좋은 음악입니다. 여섯 곡 모두 그간 제가 일관되게 보여주려 했던 ‘서정성’이라는 하나의 결 안에서 움직이는 노래들이에요.수록곡 대부분이 어떤 대상과의 이별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요.늘 음악 안에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려 하는 편인데요. 얘기한 것처럼 어떤 대상과의 이별일 수도 있고, 과거 어떤 시점의 나와의 이별일 수도 있어요. 

앨범 소개 글에 “슬픔이란 게 나의 원동력”이라는 말을 썼던 게 기억에 남는데요. 그런 감정을 음악 안에 털어놓는 게 때론 두렵지 않나요?
물론 있죠.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고 싶다가도, ‘이렇게까지 송두리째 보여줘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때때로 들어요. 그럼에도 이번 앨범은 그런 생각을 최대한 하지 말자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솔직함을 농도로 치자면 “상처받지 않는 법 있을까, 태어나면 원래 아픈 걸까”라는 가사로 이뤄진 ‘이유’라는 곡이 가장 짙지 않을까요.

곡을 발표하고 나면 기쁨과 아쉬운 마음이 동시에 들 것 같아요.
매번 곡을 발표하고 나면 아쉬움이 커요. 아마 제가 너무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일 텐데, 그런 저를 아니깐 항상 처음은 “이번엔 좀 덜 괴로워하고, 그냥 쉽게 해보자, 현상아” 하고 시작해요. 하지만 종국엔 쏟은 애정만큼 잘하고 싶으니까, 그게 잘 안 되는 거죠. 발표하기 전부터 “이만큼만 사랑하고 이만큼만 아쉬워해야지”하고 애써 다짐해요.

 

 

계속 다쳐봐야지 상처에 무뎌진다고 

생각해요. 음악과 거리를 두려는 때도 

찾아오겠지만, 결국은 이 길로 돌아올 거예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으니깐요.

 

 

계절이 변하는 시점마다 곡을 발표했는데 계절을 꽤 타나 봐요.
엄청나게 타요(웃음). 흔히 말하는 ‘계절 냄새’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인데요. 그럴 때 있잖아요. 무더운 여름에 비가 한 번 내려요. 그럼 바람이 이전과는 달라지거든요. 그 변화를 감지하면 심장이 왠지 간지러워지는데, 그건 싫은 것도 아니고 싱숭생숭함에 가깝죠.

연말 단독 콘서트는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나요? 
공연마다 정말 치밀하게 준비하려고 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늘 부족한 면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걸 바꿔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팬들은 제가 부족하다 느낀 모습도 늘 좋아해 주잖아요. 이미 가지고 있는 좋은 면과 성장시킬 수 있는 최선 사이에서 내린 나름의 답을 무대에서 보여드리려 합니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현상 씨를 본 적이 있어요. 표정은 덤덤한데,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무척이나 격렬한 느낌이었죠. 
적어도 무대 위에서는 가능한 한 솔직해지려고 해요. 음악은 마음을 전달하는 행위잖아요. 온 힘을 다해 불러야만 듣는 이에게 반절이라도 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니깐요. 아마 그런 마음이 전달되었나 봐요. 평소에는 어떤 감정이든 한 극단으로 가지 않게 자제하는 편이거든요. 소극적일 때도 많고요. 아마 감정을 해소하는 방안이 음악인가 봐요. 감정을 토해내는 노래가 많은 게 그래서인지도 모르죠.

음악도 그렇고, 팬들과도 최선을 다해 소통하는 것 같아요. 
팬들에겐 늘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해도 이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여겨요. 그만큼 강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죠. 더더욱 콘서트나 무대에서 허투루 할 수 없는 이유예요. 때론 팬카페에서 팬들은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켜보는 그 자체가 즐겁기도 합니다(웃음).

가수로서 꼭 오르고 싶은 꿈의 무대도 있을까요?
더 큰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건 가수로서 물론 꿈인데요. 그것보다 내실을 다지고 싶다는 바람이 더 커요. 저는 앞으로도 50세, 60세까지 음악을 할 거니깐요. 조금 시간이 걸릴지라도 내실을 다지며 천천히 느리게, 하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현상은 무대에서 가장 자신을 가슴 뛰게 만드는 곡으로 ‘등대’를 꼽았다. 특히 기타 솔로를 연주할 때는 그간 자신의 내면에 쌓인 감정을 해소하는 기분마저 든다고.

 

음악이 때론 현상 씨를 힘들게 해도 계속 이어갈 계획이군요?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으니까요. 밥 먹고 음악만 해와서 다른 쪽으로는 영 형편없거든요(웃음). 친구들도 늘 “넌 정말 음악하길 잘했다”라고 심각하게 말할 정도예요. 제일 좋아하는 게 음악이기도 하니깐, 이 일을 해야겠죠. 다만 ‘조금 덜 사랑하면 힘도 덜 들 텐데’라고는 고민하고 있어요.

인생 만화가 <BECK>이라고요? 평범한 고등학생이 음악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닫는 소년 만화인데, 현상 씨가 걸어온 길과도 닮아서 신기했어요.
고등학교 때 <BECK>을 처음 보고, 그 뒤로 몇 번이나 정주행했는지 기억조차 안 나요. 그만큼 빠져 있었죠. 당시에는 주인공 ‘유키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는데요. 무의식이 현실을 지배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제 인생에도 그런 만화 같은 일들이 생겨나는지도요. 이제 <BECK>은 유키오의 이야기고, 내가 써 내려갈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요.

<BECK>에서 좋아하는 대사도 있어요?
(망설이지 않고) “걸음마 전에 뛰는 법도 있어야 한다.” (웃음) 제 인생관과도 닮아 있는 말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후회하기보다는 일단 저질러 놓고 후회하거든요. 걸음마 전에 우선 뛰어보려고 하죠. 가능한 음악 활동을 꾸준히 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현상 씨가 그리는 꿈의 집은 어떤 모습인가요?
단독주택에, 지하에는 영화관처럼 360도 서라운드 시스템도 갖춘 영화관을 꼭 만들고 싶어요. 지금 작업실도 거창하게는 아니지만 사운드가 훌륭한 스피커가 있으니, 자주 영화를 보곤 하거든요. 주로 곡을 쓰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영화는 좋은 도피처가 돼요. 그때만큼은 잠시 음악과 떨어져 있을 수 있거든요. 아, 물론 합주실도 있어야 합니다(웃음).

“아킬레스건이 음악”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중요하면서, 또한 다치기 쉽다는 걸 의미하잖아요. 이 소중하고 여린 아이를 어떻게 앞으로 잘 데려갈 계획인가요?
잘 데리고 간다기보다는, 그냥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럼 더 이상 다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깐요. 아직 20대니깐. 그러는 편이 오히려 길게 보았을 때는 좋은 방향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는 거죠.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두렵죠. 그런 일이 막상 찾아오면 분명 속상할 테고요. 그래도 계속 다쳐봐야 상처에도 무뎌진다고 생각해요. 음악과 거리를 두려고 할 때도 찾아오겠지만, 결국은 이 길로 돌아올 거예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으니깐요.

벌써 12월이에요. 올해와 내년을 어떤 식으로 그려보고 싶어요?
우선 단독 콘서트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마무리하려고 해요. 그걸 잘 끝내고 나면 해가 바뀌겠죠? 그럼 잠시 여행을 다녀올까 봐요. 그러고 나면 또다시 나의 소중한 20대의 시간을 음악하는 데 바치고 싶습니다. 다만 내년에는 조금 덜 속상하고, 덜 고민하는 제가 되고 싶은 게 작은 바람이에요.

 

어린 시절에는 영화감독과 만화가를 꿈꿨다는 현상. 당시에는 노트에 주로 네 컷으로 끝나는 허무 만화를 그렸다고 고백했는데, 쓸쓸한 멜로디에 차분하게 노래하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의외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