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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화보, 광고

<싱글즈> 2020년 1월호

 

하현상의 음계

 

덤덤하게 읊조리는 하현상의 목소리에는 하얀 겨울 냄새가 배어 있다. 때묻지 않은 음색으로 노래 한 곡을 마쳤을 때, 우리는 마음을 흔드는 시 한 편을 만난 기분에 빠진다.

 
 

 
<슈퍼밴드> 종영 후 타이트한 스케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좋은 프로그램에서 주목을 받아 우승을 한 뒤에 오는 바쁜 스케줄은 언제나 환영이다!(웃음) 그동안 많은 인터뷰와 함께, 소속사도 정해져서 개인 팬미팅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기쁨 중 하나다. 게다가 <슈퍼밴드> 전국 투어 콘서트가 내년 초까지 잡혀 있다. 바쁜 건 좋은데 결국 체력 싸움이라 각오를 다지고 있다. 
 
평소체력 관리를 잘 하는 편인가? 
예전에는 다음 날 스케줄과 관계없이 대부분 유튜브나 영화를 늦게까지 보면서 잠을 자지 않았다. 아직 젊다고, 숫자에 불과한 나이만 믿고 까불었는데, 다음 날 수면 부족으로 인해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최근에 거의 26시간을 깨어 있던 적이 있었다. 좀비가 되더라. 이제는 그다음 날이 무서워 잠이 오지 않아도 누워 있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
 
<슈퍼밴드>에서 우승까지 가리라는 걸 예상했나?
겸손이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슈퍼밴드>에 지원한 것도 처음엔 별생각 없이 그저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점점 순위가 올라가는 거다. '어라?' 하는순간 우승해버렸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슈퍼밴드>에서 하현상의 터닝 포인트는 어느 지점이었나? 
'프런트맨으로 나섰던 Viva La Vida' 무대를 계기로 나를 좋아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그 전까지는 나라
는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묵묵하게 해왔는데, 소극적이었던 나를 밖으로 끄집어내준 고마운 무대다.
 
<슈퍼밴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앞에서도 얘기했던 본선 1라운드 Viva La Vida. 엄청 떨렸다. 음악감독님조차도 방송에서 루프스테이션을 쓴 팀은 우리가 처음이라고하실 정도로 생소한 연주였다. 한 번 실패하면 아예 무대 자체가 날아가는지라. 손에 꼽을 정도로 정말 많이 떨렸던 무대였다.
 
그 무대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얼굴이었다는 반응이 많다. 
시작하기 전까진 굉장히 떨렸고, 그 이후로는 괜찮았다. 나도 몰랐는데, 실전에 강한 타입인가 보다. 무대는 항상 즐기는 편이어서 재미있었고, 나에게 많은 의미를 남겼다. 하지만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진 못 한걸로 기억한다. 성량을 비롯해서 여러 지적을 받았다. 밴드 넬의 김종완 심사위원님께서 "하현상 군의 무대는 광기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번 무대에선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없었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셨다. 방송에는 편집됐지만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안에 광기가 참 많은데 조절이 미숙한 것 같다.
 
음악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의 The Blower's Daughier. 고등학교 1학년 초에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4분의 순간은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4분이다.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 느낌이었달까. 이후로 기타와 피아노를 접하게 됐다. 예술학교에 보컬로 입학을 해서 기타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된 게 바로 이 곡이다.
 
꿈이 뮤지션이었나? 
실은 만화가였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만화를 그려댔다. 옛날에는 잘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손을 놓고 있다 보니 실력을 가늠할 수가 없게 됐다. 퇴화한 건 아닐까 걱정이다(웃음).
 
존경하는 뮤지션은?
너무 많다. 오아시스(Oasis), 제임스 베이(James Bay), 1975(The 1975), 글렌 핸사드(Glen Hansard), 코다라인(Kodaline) 등 대부분이 영국과 아일랜드 뮤지션이다. 조용하고 담담한, 옮조리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뮤지션들이 좋다.
 
하현상이 생각하는 밴드구성의 기본은 무엇인가?
글쎄. 지금은 그런게 없다. 예전에는 밴드 구성은 기본적으로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가 갖춰진 형태가 당연시되었지만, <슈퍼밴드>를 계기로 그런 기준이 무너졌다. 지금 내가 속해 있는 '호피폴라'도 어떻게 보면 밴드의 기본 포맷은 아니다. 보컬 2명, 핑거스타일 기타, 첼로, 이런 조합의 밴드가 없지 않나? 겉에 보이는 밴드의 형식이 어떻든 최상의 시너지가 가능하면 그게 바로 밴드이지 않을까.
 
한국 음악계에서 록 음악, 밴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인식이 많다.
나도 궁금하다. 계속 음악을 하면서 '과연 록 음악의 불모지라 불리는 한국에서 이런 음악으로 잘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다. 막연한 불안함보다는 호기심. 음악이라는 것은 시대와 세대를 거쳐 트렌드가 돌고 도는 반복적 패턴을 보인다. 비단 음악만이 아닌 문화 전반에 걸쳐서도 그 주기가 찾아오는 것 같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다른 사람의 공연이 있다면?
재즈 페스티벌에 가서 만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라는 듀오의 무대가 있었다. 어쿠스틱 기타 뮤지션으로 당시엔 그냥 유명한곡 한두 개 정도 알았을 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티스트였다. 하지만 조용하게 화음과 합이 잘 맞는 무대는 나에게 충격과 놀라움을 안겼다. 그 후에는 말할 것도 없이 무한대로 빠져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다른 아티스트들도 그날 공연을 했지만, 이 팀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트스쿨을 꾸준히 다녔다.
리라아트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예대에 입학했다. 예술고에서는 보통 합주를 많이 한다. 기타, 베이스, 드럼 등 실용음악과 안에 전공 분야가 나누어져있어 그룹핑을 한다. 일주일 시간표에는 합주가 반 이상이다. 그것만 보더라도 음악은 합과 연습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잘 다룰 수 있는 악기는 기타와 키보드, 나머지 드럼. 베이스 등의 악기도 친구들 어깨너머로 배우거나 서로서로 가르쳐준다. 기타도 친구들에게 배웠다. 보컬 전공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전공자 친구들과의 교류는 많은 도움이 됐다. 친구를 잘사귀어야 한다(웃음).
 
유튜브에 업로드된 커버곡들이 많다. 어떤 기준으로 곡을 정하나?
딱히 기준은 없지만 최소 50번 이상 들은 곡들이다. 노래가 꽃히면 그 노래만 듣는데, '아, 오늘은 이 노래야! 라는 필로 선택하고 부른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게 아닌, 공연 현장에서 찍은 커버곡 영상이 있다. 로드(Lorde)의 'Liability'라는 곡으로, 그 노래가 업로드되어 있는지 아마 잘 모르실 거다. 그 노래가 내가 부른 곡 중 가장마음에 들었다. 꽤 잘불렀던 것 같다(웃음).
 
<싱글즈> 유튜브의 '싱글즈 스테이지를 위해 라이브 영상을 촬영했다. 이를 위한 곡으로 알렉 벤자민(Alec Benjamin)의 'Let Me Down Slowly를 선택했다. 
지금까지 새롭게 알게 된 아티스트 중에 제일 좋아한다. 처음 들었을 때 내 심장에 닿는 게 달랐고 전율이 흘렀으며 울림이 있었다. 깜짝 놀랐다. 요즘 대세다. 겨울과도 잘 맞는 감성인 것 같아 기타 편곡으로 진행해봤다. 리스너들이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
 
드라마 O.S.T에 많이 참여했는데 본인의 곡과 커버곡, 그리고 O.S.T를 불렀을 때의 느낌이 다를 것 같다. 
각각 다른 재미가 있다. 내 노래나 커버곡의 경우, 원작자의 허락을 받고 부르는 게 아닌, 내 입맛대로 요리해서 부르는 자유와 즐거움이 있다. O.S.T는 다른 작곡 가분의 노래이므로 작곡가가 원하는 방향에 맞춰서 하는 배움과 재미가 있다.
 
가사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얻나? 
가사를 쓸 때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돌려서 쓰는 편이다. 2018년에 발표한 'Dawn', Where are you Now' 등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이 전반적인 스타일은 아일랜드, 영국의 뮤지션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시의 운율처럼 은유적으로 임팩트 있게 전달하고자 한다. 영화에서도 꽤 많은 영감을 얻는다. 한 번 본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외우는 걸 좋아한다. <피아니스트(The Pianist, 2002)》가 그런 작품으로스무번 넘게 본 것 같다. 폴란드 출신 유대인 주인공이 나치의 침공을 피해 도망다니면서 연주하는 내용이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그 처절함과 죽음의 문턱에서도 연주를 놓지 않는 정신, 신념 등이 계속 보고 싶게 만들었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다시 보기를 반복할 정도로 나에게는 인생영화로 꼽힌다. 그리고 만화책을 많이 본다. 인생만화 <벡BECK)》. 거의 서른 번 이상 읽은 것 같다. 밴드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나오는 밴드 만화라 이 역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준다.


지금까지 썼던 가사중 가장 마음에 드는구절은? 
팬미팅 때 말했던 'US의 '이 후회 가져가는 건 우리가 아닌 나뿐인 거야라는 가사가 있는데, 엄청 좋아하는 구절이다. 이 곡의 가사를 붙일 때 금방금방 썼다. 2시간 안에 번뜩 생각이 나서 완성한 가사였다. 노력에 비해잘나온 느낌이 든다. 무의식중에 갑자기 팍 생각나는 그런 것들이 있지않나?
 
노래하는 자신의 목소리의 어떤 부분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는가?
나도 그걸 계속 고민했다. 불안정함에서 오는 아슬아슬한 떨림이 아닐까? 노래를 말하듯이불러서 딕션이 편안하게 들린다는 반응이 있었다.
 
'사계' 중 자신은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겨울이 좋다. 겨울에 발표한 곡들이 많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의 그 환절기 냄새가 너무 좋고 그 냄새가 묻어나오는 곡을 쓰고 싶다. 초겨울 언저리의 싸한 바람 냄새, 너무 냄새에 집착하나?(웃음)
 
<싱글즈> 오디언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의미로 곡을 하나 추천해준다면,
SG워너 비의 김용준,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 선배님의 'Must Have Love' 경쾌한 화음이 멋들어진 노래로 겨울과 신년에 어울리는 행복한 노래다. 겨울이 되면 항상 듣는다.
 
<슈가맨3>에서 이소은의 '서방님'을 호피폴라가 편곡해 아름다운 무대를 올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노래다. '서방님'이라는 곡에 황진이의 입장에서 쓴 곡이라는 것을 알고 부르니까 더욱 소중하고 의미가 깊게 다가왔다. 호피폴라는 소년의 시점으로 재해석해 원곡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려고 노력했다.
 
새해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특별한 목표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오늘들을 평화롭게 살자가 모토다. 왜 그런 책 있지 않나?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모두들 맘편하게 소박하게 시셨으면 좋겠고, 2020년의 하현상 많이 기대해주시면 좋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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