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화보, 광고

<데이즈드> 2019년 8월호

 

 

 

 

 

소년과 청년, 이상과 현상

 

 

 

하현상은 <슈퍼밴드> 초대 우승 팀인 '호피폴라'의 보컬이자 장래가 촉망되는 싱어송라이터다. 모공 하나 안 보이는 말간 피부에 새초롬함과 피곤함을 넘나드는 표정으로 내 앞에 앉은 그는 앞서 언급한 거한 타이틀이 아직은 너무도 크고 무거운 1998년 학생, 하현상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오늘은 <슈퍼밴드> 마지막 경연을 딱 일주일 앞둔 7월 5일이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무튼 별안간이었다. 아마 그때도 온갖 출장과 업무로 제정신이 아닌 채 침대에 누운 새벽녘이었는데, 정말 별생각 없이 <슈퍼밴드>라는 프로그램을 VOD로 보게 되었다. 그저 나도 한때는 누구나처럼 홍대 앞 클럽을 다니면서 밴드 같은 걸 꿈꿔본 사람이니, 일단 프로그램 제목에 이끌렸다. 그렇게 보기 시작한 게 첫 화였고,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내게, 청춘들이 서로 모르는 이들과 팀을 이뤄 음악이라는 장르로 열정을 표출하는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강한 흡인력을 선사했다. 해외에서도 놓치지 않고 다시 볼 만큼 탐닉으로 승화됐다. 심사위원의 말투 하나하나 곱씹어보기도 하고, 음원을 다운로드하기도 했으며, 내가 프런트맨이 되어 가상의 팀을 구성해보기도 했다. 심지어 1년에 한 번 가는 <데이즈드> 워크숍을 <슈퍼밴드>처럼 짜 보면 어떨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총 열네 번의 방송, 한 세 달간 나는 <슈퍼밴드>와 동거했다. 그러고는 하현상에 중독됐다. 중독이란 단어가 좀 세지만 그 말이 답이다. 이나우의 예술성과 양지완의 로큰롤, 강경윤과 이종훈의 자유로움, 임형빈의 뇌쇄적 반항성에도 매료됐지만, 그는 달랐다.

시작은 그의 음색에서부터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못 부른 나는 꼭 갖고 싶은 목소리가 있었다. 음악에 문외한인 내 기준에서 설명하자면 '날아라 병아리'의 신해철과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의 이승환, '마법의 성'의 김광진과 '메모리즈'의 사준 같은 소년의 흰 도화지와 청년의 현명한 기개가 뒤섞인, 요즘 잘 들을 수 없는 뭔가 그런 것. 따라서 하현상의 시작은 곧 동시에 내게 그런 음색을 들을 수 있다는 발견과 희망의 여정이었고, 3라운드에서 재리드 제임스의 '1000x'를 부를 때쯤 확신했다.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이제 내게 남은 일은 뻔했다. 지난 20대와 오늘의 나를 동시에 투영하면서 수도 없이 눈물을 쏟으면 되는 것뿐. 고맙고 또 고마운 사람, 하현상을 마지막 경연 일주일 전에 만났다. 너무도 미안하고 또 미안하게도 "피곤해요. 좀 많이 피곤하고, 한 일주일 만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올해 초부터 계속했으니까 쉬고 싶은 마음이 좀 간절해요.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조금 쉬어가고 싶어요" 

그는 솔직했다. 그러면서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뜨거운 관심을 실감하고 겁을 냈다. "실감하죠. 그런데 뭔가 좀 무서워요. 갑자기 확 많은 관심을 받으니까 무서운 느낌이 큰 것 같아요. 관심을 가져주시는 게 정말 너무 좋은데 한편으로는 두려워요" 마지막 경연이 남은 상황, <슈퍼밴드>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물었다. "솔직히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뭔가 이뤄야겠다는 마음으로 하진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밴드를 기반으로 하는 음악이다 보니 그런 음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저를 알리고 싶기도 했고요. 그냥 운이 좋았죠." 기대한 것보다 그 정도가 더 큰 것 같은지 묻자 처음 웃었다. "네, 정말요. 생각보다 훨씬 많이 그렇게 되었어요."

1, 2라운드에 5:0으로 지고 지쳐 있던 시기에 대해 물었다. "그때는 방송이 나오기 전이라 대중의 반응을 잘 모를 때예요. 1라운드를 5:0으로 지고 2라운드도 5:0으로 지니까 너무 하기 싫은 거예요. 팀원들과 조율해 만든 음악인데 결과를 보니 '방향성과 취향이 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도망치고 싶었어요." 절체절명의 순간, 그에게 도움이 된 것은 방송 시작과 동시에 얻은 반응이다. "방송이 나간 뒤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요. 그래도 내가 생각한 것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었죠." 그는 1라운드 프런트맨 시절 바이올리니스트 신예찬과 함께했고, 뒤이어 첼리스트 홍진호와 함께 우승까지 이뤘다. 현악기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그 생각은 방송하기 전부터 했어요. 제가 원래 좋아하는 음악에 현악기가 많이 나오거든요. 오아시스도 현악기를 많이 쓰고 데이미언 라이스도 그렇고, 그래서 막연하게 만약 음악을 만든다면 현악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앞서 언급한 3라운드, 어쩌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프런트맨인 아일을 만난다. "그때가 1라운드 방송이 나간 시기일 거예요. 약간 좀 내려놓고 있던 상황인데 갑자기 아일 형이 저를 뽑았고, 이기게 되었죠. 원래 처음에는 정말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스트레스받고 힘들던 과거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니까 인터뷰하는 데 눈물이 계속 나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창피해요(웃음)"

정말 창피해하는 웃음을 보니 뭔가 마음이 놓인다. 하현상은 호피폴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슈퍼밴드> 시작할 때 지원서에도 썼지만 음악이 끝났을 때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뭔가 그걸 지향할 수 있는 밴드가 만들어진 것 같아 굉장히 좋아요. 아일 형은 약간 제갈량 같아요. 멤버들이 각자 의견을 제시하면 전부 수렴해 체계적으로 진행해주죠. 진호형은 온화해요. 비유하자면 관우? 영소는 텐션이 엄청 높고 해맑아요. 말도 빨리하고 정말 귀여워요. 방송에 보이는 모습보다 더 귀여운 것 같아요. 저와 반대되는 텐션을 갖고 있어서 보기만 해도 좋아요." 스트레스는 정말 없을까. 게다가 마지막 경연 일주일 전, 지칠 대로 지친 상황임에도, "지금도 분위기는 전부 좋아요. 큰 트러블도 없고요. 합주나 편곡할 때 의견 조율하는 부분에서 살짝 안 맞아도 뭔가 감정이 상하거나 그런 적은 없어요, 아예."

아주 조심스레 마지막 결과에 대해 물었다.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아니요, 저는 지금도 기대 이상으로 충족됐어요. 솔직히 지금 너무 만족스러워요. 만족 이상이에요. 1등이나 2등이 목표가 아니라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에요." <슈퍼밴드>는 어떻게 기억될까. "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음악을 해본 적이 없어요. 거의 일주일 내내 음악에 시간을 투자하며 몇 달 동안 지내본 적이 없는데 이 시간들이 지나가면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지금은 힘드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저에게 분명 큰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밴드 활동의 지속성에 대해서도 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싱글 <Dawn>과 EP앨범 <My Poor Lonely Heart> 등을 발표했고,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OST 중 '바람이 되어'를 부르기도 한 싱어송라이터다. “혼자 활동해보고도 싶고, 밴드로 활동해보고도 싶고 그래요." 여기저기서 많은 제안을 받을 것 같다고 하자 "그렇게 많이 들어오지 않던데.…"라며 웃는다. 이 사람이 하현상이다. 또 하나 덧붙이면, 어느 기사에서 "닭꼬치와 초밥을 원 없이 먹을 정도로 성공하고 싶다"라고 인터뷰한 기사를 봤다고 하자 "약간 와전되기는 했어요. 그냥 회전초밥집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 정도 닭꼬치도… 지금은 별로 안 당기네요"라며 웃는 사람이 하현상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만나는 사람만 만나는 스타일이에요 극도로 낮을 가리는 성격이라 솔직히 아직까지 말 한 번 안 섞어본 참가자도 있어요 하현상은 수줍음 이상이다. 그러나 <슈퍼밴드>에서는 유독 많이 울고 많이 웃는다. 거기에 감정을 이입한 이는 한둘이 아니다. “초반 방송에서는 이런 제 모습이 안보였는데 최근에는 잘 웃는 모습도 나가고 하니까 대중이 대체 어떤 캐릭터인지 궁금해하더라고요. 사람은 단편적이지 않잖아요.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이 모여 하나의 사람이 완성되는 건데 방송에는 한 가지 모습만 보이니까. 그냥 저는 다양한 면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 그가 마음을 주는 것은 의외의 '곳'이었다. "태국을 자주 갔어요. 태국에 제가 좋아하는 섬이 있어서 좀 쉬다 오고 그랬거든요. 그 섬을 주제로 만든 노래도 있어요. 코사멧 'Koh Samed'이라고, 섬 이름이 제목이에요 그 섬이 고요해요., 가서 바다도 보고 쉬는 게 좋아요.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또 한번 가고 싶어요."

보통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곡이 가장 잘 써진다는 그는 그저 좀 너드한 스타일에 컨버스 신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그는 컨버스를 신고 왔다. 어떤 꿈을 향해 달려갈까. "앞서 말했듯이, 솔직히 뚜렷한 목표는 없어요. 음악적으로는. 지금도 너무 좋고 괜찮아요. 썩 만족스럽고요. 제가 큰돈을 벌고 싶다든지 그런 욕망이 없어서요. 그래서 지금 생각으로는 방송이 끝나고 휴가가 생기면 뜬금없지만 제빵 쪽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빵????? "마카롱이 요즘 최대 관심사예요 그래서 제빵을 배워보려고 해요. 좋아하기도 하고요. 코크(마카롱의 과자 부분)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인스타그램에 한번 눈두덩을 강조한 사진을 올렸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마카롱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카롱 사업가로 전향을 한번. 하하. 뭐 나중 얘기지만 지금은 정말 마카롱 만드는 걸 배워보고 싶어요."

마음이 좀 풀린 걸까. 혹여 내게 마음을 연 걸까. 정말 묻고 싶던 것을 물었다. 여태까지 부른 곡중 특별히 더 아끼는 것이 있다면? “저는 아무래도 1라운드 때 한 곡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무것도 모를 때 프런트맨이 되어 노래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좋을 때였으니까요” 이어진 촬영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두 번째 착장에서 머뭇거리던 그가 세 번째 컷부터 놀랍도록 안정적으로 잘 해내기 시작했다. 하현상은 여러모로 이상적인 소년이다.